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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뜨기 전 5시 40분에 일어나 이것저것 챙긴다. 간단히 아침을 차려먹고는 주섬주섬 필요한 준비물들을 챙긴 후, 아내에게 고맙다는 포스터 잇 하나 싱크대 위 선반에 붙여 놓는 나름의 '센스'를 발휘한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나를 닮아 눈치 빠른 아들 산희가 일찍 잠을 깬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는 아들에게 살짝 뽀뽀하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육아를 핑계로 학교를 휴직한 이후 아내는 최대한 나에게 시간을 주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왜 이러지?’라는 뭔가 모르는 불안함이 있었지만, 이제 진심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결혼 이 후 나는 늘 자유와 시간을 원한다고 집사람에게 투덜거렸다. 근데 막상 자유가 주어지니 부담이 되는 건 왜일까? 내가 가지고 싶었던 건 자유가 아니라, 내가 힘들게  일하고 있음을 아내에게 알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인정받고 위로 받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출발하기 직전까지 ‘갈까? 말까?’ 하는 마지막 유혹을 뒤로하고, 혼자 떠나야 할 때가 있다고 스스로 되뇌며 자동차의 시동을 건다.

 

서울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서해안고속국도를 타고, 영동고속국도를 지나, 중앙고속국도를  질주하여 단양의 고수동굴을 향한다. 일기예보를 제대로 보지 않았더니 비가 오락가락 하는데도 우산 하나 챙기지 못했다. 나는 맑고 따뜻한 날씨가 좋다. 특히 맑은 아침 햇살을 받으면 기분이 막 좋다. 반대로 구름이 끼고 흐려지면 내 기분도 흐려져, 평상시보다 더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사실 내 기분이 날씨에 따라 그렇게 쉽게 달라진다는 것을 30살이 넘도록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어느 흐린 날 다른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을 듣고 '아 ~ 내가 그렇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흐린 날 보다는 차라리 비 오는 게 낫다. 비 오는 날 차 안에 있고, 와이퍼가 왔다 갔다 하면서 유리창을 닦는 기분이 나쁘지 않고, 차 안에서 듣는 음악소리도 나름 운치 있다. 저 밖의 세상과는 다른 차 안의 쾌적한 느낌은 문득 내 자신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충청북도 단양(丹陽)은 강원도 영월, 경북 북부 지방에 접해 있다. 소백산맥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포천, 단양천 등의 지류가 남한강과 합류한다. 지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석회암과 관련된 붉은 토양 때문에 생긴 지명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단양의 지명은 ‘연단 조양(鍊丹調陽)’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단양에 도착해 고수동굴을 가려니 가는 길이 공사 중이어서 수 킬로미터를 더 둘러서 도착해야만 했다. 오전 9시 30분쯤 도착해 보니 평일이라 그런지 동굴의 안내자들도 아직 투입되지 않았다. 내가 첫 손님이다. 사실 예전의 기억으로는 고수동굴이 도담 삼봉과 같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기억은 믿을게 못된다.

 

석회암은 수 억 년 전 기후가 따뜻한 바다에서 만들어진 암석이다. 한반도의 강원도와 충청도 지역은 고생대(약 4~5억 년 전)에 따뜻한 바다였고 그곳에 살았던 산호, 패류, 조류 등이 퇴적되어 석회암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바다였던 그 곳이 상승(융기)해서 현재는 육지가 되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석회암의 주성분은 탄산칼슘(방해석)인데 물과 이산화탄소에 약하다. 물을 만난 탄산칼슘은 쉽게 녹아서(용식되어서) 다양한 지형들을 만들게 되는데, 지리학에서는 이걸 '카르스트(Karst) 지형'이라고 부른다. 지하수에 의해 용식되어 만들어진 대표적인 카르스트 지형이 바로 석회동굴이고 단양, 영월, 태백, 삼척 등 석회암이 분포하는 지역에서 흔히 발견되어진다. 바다에서 만들어진 만큼 바다의 흔적들과 고생대의 대표적인 생물인 삼엽충 등의 화석도 이 지역에서 발견된다. 가장 낮은 바다였던 이 곳이 지금은 가장 높은 산맥이 되어있다.

 

고수동굴에 들어서자 당장 답답함과 두려움이 발길을 주저하게 만든다. 동굴 속 아래 위로 차가운 철로 만든 계단들이 연결되어 있고, 비가 내려서인지 동굴 내부에는 물이 뚝뚝 떨어진다. 약간의 고소 공포증과 폐소 공포증을 함께 가지고 있는 약한 남자인지라 살짝 다리가 후달거린다. 사진을 찍을 때도 난간에 잘 기대어 다리에 힘을 꽉 주고서야 겨우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가끔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동굴 속 탐험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그런 일은 나에게 무리인 듯 하다.

 

고수 동굴내부에는 물에 녹은 탄산칼슘이 침전되면서 다양한 모양의 스펠레오뎀들이 나타난다. 지하수가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커텐처럼 생긴 ‘유석’, 천장에 달린 ‘종유석’과 바닥에서 자라는 ‘석순’, 그리고 종유석과 석순이 연결되어 만들어진 기둥인 ‘석주’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계단식 논처럼 생긴 ‘석회화 단구’란 놈도 볼 수 있었다. 후달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사진을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서인지 긴장해서인지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 쉽게 미혹되지 않는 불혹(不惑)의 나이 마흔을 넘은 남자의 이 소심함이란. 이럴 땐 내가 이걸 즐기는 건지 지리교사란 의무감으로 하는 건지 고민이 된다. 어쨌든지 아무튼 찍었다.

 

01_cave04.jpg

고수동굴을 빠져나와 주변에 위치한 다양한 지형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마을로 단양군 가곡면 여천2리로 차를 몰았다. 이 지역 산지 주변의 농경지는 모양이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농사를 짓기 위한 네모반듯한 농경지와는 달리, 산지 중간 중간에 마치 둥글고 오목한 그릇모양 또는 연못처럼 생긴 밭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전부터 이런 밭을 ‘못밭’ 또는 한자로 ‘지전(地田)’으로 불렸으며,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도 '여천2리(못밭)'이라고 써있다. 낯선 사람과 만나는 걸 싫어하는 소심한 성격 탓에 언덕을 넘어 마을을 조금 지나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오솔길을 따라서 ‘못밭’을 찾아간다. 못밭은 지리학적인 용어로 '돌리네(doline)'라고 부르는데,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주로 빗물이나 지표수에 의해 석회암이 용식되어 만들어진 그릇같은 오목한 모양의 땅(와지)을 말한다. 석회암은 갈라진 틈(절리)이 많아 물이 지하로 잘 스며들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흔한 벼농사는 힘들어 마늘 등의 밭농사로 주로 이용하고 있다. 이곳의 못밭에서도 대부분 파란 마늘 싹이 올라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지하로 물이 빠지는 구멍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걸 '싱크홀(sink hole)'이라고 부른다. 싱크대 가운데 있는 물 빠지는 곳을 생각하면 쉽다. 비가 오는 바람에 붉은 색의 진흙이 운동화에 잔뜩 묻어 더욱 발걸음을 힘들게 만든다. 석회암이 많이 분포하는 지역의 토양은 다른 지역보다 붉은 색을 띄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석회암이 용식되고 난후 용식되지 않은 철, 알루미늄 등의 성분들이 산화되어서(쉽게 말하면 녹슬어서) 붉게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테라 로사(Terra rossa)'라고 부르는데, '테라'는 땅을 의미하고 '로사'는 붉은 장미를 말하는 것이니, 장미처럼 붉은 땅이렷다.


02_doline02.png


02_doline01.jpg


하지만 오솔길을 따라 보물을 발견한 듯 열심히 못밭의 사진을 찍으며 오르는 내내 중장비와 대형트럭의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와 왠지 마음이 불안하다. 어떤 곳에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푯말이 나타나더니, 언덕 넘어 회색빛의 폐허같은 거대한 석회암 노천 광산이 눈앞에 보인다. 사진을 찍으려다 전쟁이 일어난 것 같은 다이나마이트 폭발음에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두려움마저 찾아든다. 이런 소리를 늘 들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주변 마을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안녕하실까? 신문기사로 통해 보니 주변의 땅들을 대부분 시멘트 회사가 대부분 사들여 개발하고 있어 이제 우리 눈앞에서 이런 지형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석회암은 우리나라의 자원 중에서 가장 매장량이 많고 풍부한 자원이다. 석회암을 고열로 가열하면 이산화탄소가 날아가면서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산화칼슘이 되고, 그 산화칼슘과 다른 혼합물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클링커를 분쇄하여 시멘트를 만든다고 하다. 이 시멘트 공장을 석회암이 풍부한 제천, 단양, 영월, 등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시멘트 공업은 원료의 부피가 제품의 부피보다 크기 때문에 원료산지 가까운 곳에 공장을 세우는 곳이 유리한데, 이런 특징을 가진 공업을 ‘원료 지향성 공업’이라고 한다.

 

03_cement01.jpg

 

석회암 광산은 흔히 생각하듯이 땅에 구멍을 파서 채굴하는 것이 아니라, 산을 통째로 깎는 방법을 사용하는 노천광산이다. 그러다보니 주변 환경은 매우 황폐화되었고 먼지들이 많이 날리며, 대형 차량들이 빠른 속도로 수시로 왔다 갔다 하기에 주변 도로에서의 운전은 매우 주의를 기울 수밖에 없다. 대형 트럭들의 위협적인 굉음과 폭발음은 그리고 날리는 먼지는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주변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 것을 의식해서인지 시멘트 회사들은 친환경을 무척 강조한다.

 

자본주의와 개발의 논리 앞에 수 억 년간 바다에서 만들어진 역사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눈앞에 있는 콘크리트 건물을 세우기 위해,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 사라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이유로 주민들이 누려야할 기본적인 삶을 위한 당연한 요구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힘이 없어 보인다. 돈이 권력인 세상이다. 단양에서 돌리네를 눈으로 확인했다는 기쁨보다는 잿빛 답답함을 가슴에 담고 차를 돌린다.

영월과 정선의 고한을 지나 두문동재에 이르자 빗방울은 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두문동재터널은 정선의 고한과 태백을 잇는 우리나라의 가장 높은 곳(해발 1269m)에 위치한 고개라고 한다. 조선을 개국하자 고려 충신 72명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개성 인근의 개풍군 두문동에 숨어들었고, 이들을 산에서 끌어내려고 불을 지르지만 뜻을 굽히지 않아 불에 타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중 불길을 피해 태백으로 내려온 7명이 함백산 아래 산간마을에 몸을 숨겨 마을이름을 두문동, 고개를 두문동재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두문동재 터널을 지나자 영동지방인 태백은 눈으로 덮여 있다. 고랭지 채소 경작지로 유명한 매봉산의 하얀 풍력발전소와 흰눈의 모습은 푸른 빛 이상으로 눈부시고 아름다워 보인다.

 

04_maebong01.jpg

 

3월말에 아름다운 눈 구경이 좋긴 했지만 더 이상 답사를 진행하기는 힘들어졌다. 구문소를 들러 지질 답사를 하려고 했으나 눈도 많이 와 힘들 듯 하여 늦은 점심 겸 저녁을 태백역 부근의 분식집에서 먹었다.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개통되어서 그런지 평일임에도 배낭을 메고 다니는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식사 후 숙소로 예약한 태백고원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 날이 금방 어두워지고 함박눈이 내려 시야가 가려졌지만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더 앞선다. 태백 고원 자연휴양림은 태백시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가격도 착하고 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휴양림처럼 예약이 힘들지도 않아 가족끼리 와도 좋을 듯 하다. 평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는 휴양림의 통나무집에서 씻지도 않고 실로 오랜만에 혼자서 하루를 마감했다.

 

2014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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